연대의 윤리: 보이콧 버뮤다 운동의 오류에서 배우기

타자와 만나고 연대하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다. 낯선 곳을 상상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한층 조심스럽게 재점검하게 되는 밤낮이다. 부서진 일상, 무너진 생활 속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싸움에 함께 하는 길이란 과연 어떻게 내면 좋을지 고민하는 마음이 막막한 하루하루다. 난민이 도착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난민을 맞이할 책임은 어떻게 져야 잘 지는 것인지, 난민을 난민이 되게 한 본국의 상황이 해결되도록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정말 세심하게 모색하고 싶다. 한국에 온 난민과 예멘에서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 그것을 가능케 하는 데 힘을 싣자고 다짐한다.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와 진정으로 함께 한다는 건 뭘까.

연대를 위한 윤리 감각을 비판적으로 다지는 데 도움이 될 사례가 하나 있어 소개하려 한다. 기초 생활 기반이 거의 다 사라진 것과 다름 없는 예멘의 위기나, 익숙지 않을 뿐더러 반난민 정서까지 강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삶의 터전을 닦아야 하는 예멘 난민들이 처한 상황과는 조금 사정이 다른 예지만, 연대의 윤리를 다듬는 데 귀중한 참고가 될 사례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 잠시 일었던 보이콧 버뮤다 (#BoycottBermuda) 운동과 그것에 가해진 비판에 대한 이야기다.

보이콧 버뮤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꺼내기 전, 동성혼 제도화와 관련하여 지난 2년 간 정세가 급변했던 버뮤다 상황 먼저 개괄하는 게 좋겠다.

지난 6월 6일, 북대서양의 영국령 자치 속령지 버뮤다 대법원은 동성혼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임을 재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맞다, 재확인. 버뮤다 대법원은 이미 작년 5월 동성혼의 적법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등기소에서 혼인 신고가 반려되는 경험을 한 남성 커플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3년 수정 조항 통과로 성적지향을 매개로 한 차별 금지를 명시하게 된 인권법에 근거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7월 총선에서 강력한 반성소수자 노선을 표방하는 버뮤다 진보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이 하원의 2/3를 가져 가며 상황이 반전된다. 이들의 주도 하에 동성 커플에게는 시민 연대만 가능하게 하고 혼인은 이성 배우자만 누리는 권리로 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생활동반자법(The Domestic Partnership Act)이 12월 통과된 것이다. 올해 들어 2월 7일 총독 존 랜킨(John Rankin)이 이를 최종 승인하고, 2월 28일 내무 장관 월튼 브라운(Walton Brown)은 해당 법의 최초 시행일을 6월 1일로 발표했다.

이러한 격변에 버뮤다 성소수자 운동 진영은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곧바로 위헌 소송에 나섰다. 그리고 생활동반자법이, 이른바 전통적인 이성 간 혼인만 믿는 이들의 신념만 인정함으로써 동성혼도 법적 보장을 받아야하는 제도라고 믿는 이들의 신념을 차별하기 때문에, 버뮤다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조항에 위배된다는 6월 6일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냈다.

그렇게 동성혼은 인정되었다 금지되었다 결국 다시 인정된다. 버뮤다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얻은 값진 승리였다. 생활동반자법 시행 이후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법원은 판결 내용 발효까지 6주를 유예해 정부의 항소 기회를 보장했다. 내무 장관이 항소 의사를 보였기에 일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이는 버뮤다 동성혼 제도화의 최근 흐름에 대한 아주 간략한 정리일 뿐이다. 버뮤다 사회의 특수한 맥락, 사회적 논쟁 구도, 성소수자 운동 진영의 투쟁 전략, 판결문 내용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함의 등을 두루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평등한 결혼권을 비롯한 버뮤다의 여러 성소수자 인권 의제를 아울러 소개하고 분석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작년 말 올해 초 버뮤다의 동성혼 법제화 폐기가 확실시 되자 서구권 사회에서 보인 하나의 성급하고 부주의한 반응, 그 문제를 잠시 짚어 보고자 한다.

차별적인 생활동반자법이 하원을 통과하고 총독의 승인을 얻자, 다시 말해, 이미 이루어진 동성혼 제도화가 새삼 엎어지자, 분노한 성소수자들이 항의의 뜻으로 예정된 크루즈 여행을 취소하고 환불을 요구하는 등 보이콧 버뮤다 운동을 벌인다. 서구인들이 앞장선 이 운동은 유명한 관광지인 버뮤다로의 여행 상품을 불매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타격을 입혀 동성혼 제도화 폐기, 즉, 동성혼 재금지를 철회하도록 버뮤다 정부를 압박하자는 취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현지 활동가들과 꾸준히 소통해 온 국제 성소수자 단체 아웃라잇 액션 인터내셔널(Outright Action International)은 이같은 보이콧 운동의 중단을 촉구했다(#DontBoycottBermuda). 상임대표 제시카 스턴(Jessica Stern)은 2월 16일 보이콧 정세에 긴급히 개입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현지 활동가들의 요청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외부에서 자의적으로 추진한 보이콧이 대개 그러한 운동이 돕고자 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해를 입힌다고 지적하며, 버뮤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임을 밝힌다. 보이콧으로 인해 버뮤다의 관광업과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경우, 현지 성소수자들 또한 그 여파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이들이 경제적 타격의 책임을 떠안고 더 심한 차별에 노출될 가능성마저 커진다는 것이다.

그는 버뮤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이 보이콧을 원치 않는 버뮤다 성소수자들의 뜻을 존중하여 운동을 중단하고, 현지 사정과 욕구를 보다 섬세하게 살펴 움직이기를 주문하며 성명을 맺는다. 버뮤다에서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어떻게 싸워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버뮤다 사회를 살아왔고 살아갈 버뮤다 성소수자들이 가장 잘 알기에, 제대로 연대하려면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지부터 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동성혼은 불가능하다 해도 버뮤다의 성소수자 권리 보장은 미국보다 튼튼하다”는 제목의 3월 13일자 <뎀them.> 기사에는 보이콧에 반대하는 버뮤다 성소수자 활동가들의 입장이 생생하게 실렸다. 당사자 인터뷰이들은 남성간 성행위 비범죄화를 비롯하여, 차별없는 입양법 제정, 성적 지향을 매개로 한 차별 금지의 법적 명시 등, 성소수자 운동과 지지자들이 버뮤다 사회에서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확대해 온 역사를 자랑스레 풀어놓으며, 차별적인 생활동반자법 제정이라는 걸림돌 역시 버뮤다 사회의 역량으로 넘어설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대양 한가운데의 섬나라인 버뮤다를 고립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더 많이 버뮤다와 만나는 방식으로 함께 해 주기를 요청한다. 여행 보이콧이 성소수자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버뮤다인들에게 성소수자들을 탓할 좋은 핑계를 제공할 위험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달라 당부하기도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보이콧은 현지 줄루족 활동가의 요청에 의해 시작되어 전세계로 번져갔고 인종분리차별체제의 종식에 크게 기여했다. 점령국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은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의 요청에 의해 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참여와 연대를 모아내고 있다. 둘 다 당사자들의 호소에 국제 사회가 응답하는 형태로 시작된 보이콧이다.

보이콧 버뮤다 운동에는 응답의 미덕이 없었다. 응답하기 위해서는 요청의 내용부터 가늠해야 한다. 요청이 있는지 여부를 소상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묻고 듣고 대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보이콧 버뮤다 운동은 동성혼 제도화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현지인의 사정을 간과했다. 운동의 주축이었던 이른바 서구 1세계 성소수자들은 버뮤다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캠페인을 벌였다. 동성혼만을 지표로 삼아 버뮤다 성소수자 인권 상황을 단순화했기에 편파적이었고, 자신들의 보이콧이 버뮤다 성소수자 인권 향상에 기여할 거라고, 자기들이 버뮤다 성소수자들을 성소수자 혐오적인 정부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전제했기에 시혜적이었다.

버뮤다는 여행의 목적지로만 상상되었다. 보이콧 버뮤다 운동을 한 사람들이 버뮤다를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 상상하기만 했어도 그렇게 무책임한 방식으로 캠페인에 동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동성혼 제도화를 폐기했다고 버뮤다가 마치 급격히 후진한 것처럼 묘사했지만 정작 버뮤다 활동가들은 지난 투쟁의 역사에 당당했고 앞으로의 투쟁에도 희망찼다. 그리고 이들은 보란듯이 6월 6일의 승리를 경험했다.

한 사회의 차별과 억압을 생각할 때면, 그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존재도 언제나 같이 떠올려야 한다. 그들은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자기들이 처한 상황을 딛고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는 주체다. 그들의 싸움에 연대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이 그들의 사정에 무지할 수 있고 그렇게 무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 있음을 엄격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묻고 듣고 배우려는 마음으로, 정말로 힘을 보태자는 의지를 가지고, 선입견 없이, 사려 깊게 말이다. 이것은 응답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다.

*경계없는 페미니즘 기고글
2018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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